04 2 / 2014

Epilogue

2/3(월) 저녁 9시 20분에 서울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름으로 지난 5개월의 항해를 마쳤다. 요팅을 마음에 담은 시점부터 2년, 배를 산 시점부터는 20개월.


준비(과정)가 어설프고 조급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여행을 생각하고 실했했던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의 내 삶에서 볼 수 없던 광경을 목격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한히 넓은 바다와 별들. 때론 거친 파도와 바람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 결들이 보이는 듯 했다.


심심한 저녁, 기노완에서 타던 자전거. 미야코에서 스노클링, 이시가키의 해변, 화련시내를 둘러볼 때의 신선함. 바람부는 켄딩에서의 스쿠터 라이딩, 홍콩에 입성할때의 찬란한 느낌. 홍콩-수빅간의 긴 항해. 필리핀의 평화로운 지형과 아름다운 노래들. 


한국에서 도와준 이원부, 문창현, 나승기, 최영재, 아마미에서 만난 가나메, 무라세, 오키나와에서 만난 Agarie, 화련에서 만난 Terry Chaw, 켄딩에서 만난 Bud, Jose, Mimi, 홍콩의 Simon, 수빅의 Darius, 푸에르토 갈레라의 조원기, 그리고 팔라완의 Jacques. 그리고 월드 세일러인 Eric.


요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경험을 한 것 같다. 비상용 폭죽과 로케트도 실컷 쏴보고 라이프레프트도 당겨보았다. EPRIB, 위성 구조 신호도 써보았다. 화장실도 뚫어보았고 엔진 샤프트도 통으로 갈아보고. 


배가 파도에 부서지는 걸 보면서 ‘배는 차나 다른 이동수단과는 꽤나 다르다’는 걸 느꼈다. 배는 나를 이동시켜주기도 했지만, 나를 보호해주었다. 하루를 품어주고 무엇보다 내게 ‘자유’를 제공해주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못 느낀다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우린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다위에는 차선도 없고 공항이나 주차장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은 항구와 해변이 있다. 그곳에 들어가 로컬 사람들에게 나를 직접 노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 가난한 곳이라고 삶이 꼭 미저러블하진 않았다. 잘 사는 사람들의 삶은 서울과 같이 글로벌하지만 누적된 문화의 차이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다양한 삶을 관통하는 인간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진실함, 인간에 대한 사랑? 그동안 나는 참 안전한 세계에서 우스운 결정만 하는 스킬만 쌓으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주 길게 혼자. 밥도 잠도 놀기도 혼자한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미디어로 채우려 노렸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무척 낯설고 외롭고 고독했지만, 후반부엔 외로움이 삶의 본질이고 외로움을 잘 받아들이는 성숙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우리는, 특히 한국사람들은, 외로움에 대한 성숙감이 부족한 것 같다.


평생 한 번 있을 법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지만, Jacques를 만난 후 ‘이게 시작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열렸다. 


잘 배웠고 즐거웠다.


Good bye my first boat, Annapurna.

04 2 / 2014

Jacques Branellec

Jacques는 나를 위해 헬기를 두 번이나 띄웠고, 3일간 편하게 머물 곳을 제공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위해 직접 헬기를 조정해 주고 비행기 표도 구해주었다. 그의 신속 대응 가능한 능력들도 놀라웠지만 그의 배려, 그리고 참담함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얘기들도 잊을 수 없다.


Jacques는 프랑스 Britanny에서 태어났다. 타히티에서 민간항공기 파일럿으로 일하기도 했고, 요트로 세계일주도 했다, 그리고 양식진주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바다를 찾아 다니다가 35년전에 필리핀에 정주한 모험가/사업가이다.

Jacques를 만난 것은 내가 이 여행의 끝을 어떻게 인식(perceive)하느냐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는 내가 구조된 다음날 갖 출간된 자신의 자서전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는 배를 이미 5대나 부셔먹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첫 번째 배를 말아먹었을 뿐이라고…’


토요일과 일요일 짬짬이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았다.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그의 70 년 인생은 내 사고를 아주 미미한 굴곡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이 turn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한 리조트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며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사고를 바라보는 관점도 ‘안타까움-아까움’에서 ‘좋은 경험’으로 바뀌는  듯 했다.

마닐라의 집은 그의 삶을 위한 박물관 같앗다. 70평생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과 양식진주를 위해 바친 삶의 족적이 잘 남아 있었다. 그의 가족들과 동료들이 저녁 식사를 같이 했으며 내 얘기를 흥미있게 듣고, 위로라기 보다는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04 2 / 2014

에릭

에릭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그 섬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필리핀 현지에서 가능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주었다. 하루 종일 여러 곳을 연락해 구조가 끊어지지 않도 해주었다. 

에릭이 처음 위성 메세지를 받은 것은 금요일 아침 7:18분. 

곧장 푸에르토 갈레라 요트클럽에 갔다고 한다. 거기서 사람들에게 얘기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도움도 받지 못해 화가 났다고 한다. 


숙련된 세일러인 에릭은 내가 보낸 좌표를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마을/시설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찾은게 Flower Island Resort. 곧장 연락을 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자신들이 움직이기 전에 마닐라에 있는 매니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연락을 토스했다. 

Flower Resort의 주인인 Jacques는 그날 12시에 마닐라를 출발해 그의 핼리콥터를 이용해 리조트로 향하고 있었다. 2시에 리조트에 도착한 그는 현지 매니저에게 상황을 연락 받았다. 곧장 헬기를 다시 띄워 에릭이 보내준 좌표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그 좌표는 포맷이 잘못 된 좌표였다. 다른 곳으로 갔다.


에릭은 그 사이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서 구조대와 내 상황을 계속 토스해 주었다. 오후 4시에 내가 다시 위성 메신저로 연락했을 때, 에릭은 Jacques와 직접 통화를 했고 새로 보낸 좌표로 헬기가 날아왔다.


에릭은 ‘만약 구조되면, 다른 구조들에 빨리 취소연락을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방카에 의해 구조된 뒤에도 Eric은 내 메세지를 Jacques에게 릴레이 해주었다. 저녁 10시 30분 리조트에 도착할때까지.

02 2 / 2014

Annapurna와의 마지막 세일 #6

2/2 일요일

1시에 Jacques의 헬기를 타고 리조트를 빠져 나왔다. 마닐라로 가는 길에 내 배가 좌초된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섬 주변의 바다는 고요했다. 해변가에 약간의 잔해들이 보이긴 했지만 엊그제 있었던 사고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한 시간 반을 날라 마닐라로 돌아왔다. 

01 2 / 2014

Annapurna와의 마지막 세일링 #4

2/1 토요일.

리조트의 주인인 Jaques가 아침 일찍 사람들을 부려 돌섬에 좌초된 배를 구조해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파손된 배의 모습을 별로 보 싶지 않아서. 


기상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침 8시에 Jacques가 사람들을 이끌고 섬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1:30분에 잔해들을 가지고 리조트로 돌아왔다. 배는 밤새 형태도 없이 부서졌고, 몇 개의 선체 일부와 해변가로 밀려온 잔해들을 가져온다.


모두 찌그러지고 깨지고 부서졌다. Jacques가 ‘배의 nose를 가져왔는데 이를 보면 울지도 몰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의 선명이 새겨진 앞부분을 보니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31 1 / 2014

Annapurna와의 마지막 세일링 #3

5:00 헬기가 나타났다. 남은 2개중 하나의 flare를 켰다. 헬기가 나를 향해 온다. 헬기가 섬 위를 선회하기 시작했고 나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착륙할 곳이 없어 나를 둘러보고는 돌아간다. 헬기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고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6:00 해가 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하루를 보내기는 정말 싫다. 어선이 짐을 챙겨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러봤다. 어선이 나를 향해 오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해지기 전에 작은 방카(어선)에 올라탔다. 배에 타고 돌아서 보니 내가 섬 이쪽 저쪽을 옮겨 다녔던 정말 작고 좁은 벼랑이 보인다.

어선을 모는 4명의 남자들에게 핸드폰이 있냐고 물었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로 가겠냐고 물었다. Flower Island로 가갔데고 했으나 모르겠다고 한다. 배는 깜깜한 바다를 40분 정도 달려 어느 섬에 도착했다. 섬에는 집이 두 채 밖 없어 보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10명 정도의 청년들이 있었고 따뜻한 물을 건네 준다. 여기는 전기도 없어 발전기를 돌려 티브이를 본다.

에릭과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 명이 핸드폰을 가져온다. 핸드폰으로 에릭에게 내가 구조되었을 전했다. 그리고 Flower Island에 연락해 달라고 했다.


7:00 Flower Island에서 연락이 왔다. 배를 보내주겠다고. 한 시간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 사이에 어부들과 담배를 나눠 피고 그들은 내가 과자와 커피를 주었다.


8:00 한시간을 기다려도 배가 오지 않았다. 어부들의 집 마루에 누워 쉰다.


9:00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배를 다시 보내겠다고(그 지역에는 Cagdanao섬이 두 개 있엇다고 한다. 첫 배는 다른 섬으로 갔다). 


10:00 파워보트가 도착했다. 선원들은 만일을 대비해 무장을 하고 있었고 나를 인도 받은 뒤, 빠른 속도로 리조트를 향했다.

10:30 Flower Island Resort에 도착했다. 나를 기다리던 매니저, 손님들이 허그를 하며 나를 맞아준다. 신발과 옷을 챙겨주며 위스키 한 잔과 음식을 갖다준다. 그리고 작은 방르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는데, 몸에 상처가 많음을 그때야 발견했다.

31 1 / 2014

Annapurna와 마지막 세일링 #3

7:44 땅에 도착한 뒤 한 숨 돌리고 위성메신저의 SOS 버튼을 누른다. EPRIB의 스위치도 켰으나 반응이 없다. 아이폰은 ‘no service’라고 뜬다. 누구에게 연락하고 또 뭘해야 하는가? 일단 고양이를 구하고 긴팔 옷과  먹을걸 챙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가 바위에 접해 흔들리며 충격을 견뎌내는 동안 다시 배로 수영해 갔다. 배로 기어올라 이번에는 고양이를 찾는다. 선실에는 이미 테이블까지 물이 찾다. 헐에 구멍이 생겨 들어온 물이라기 보다는 위 쪽으로 들어온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일단 방수팩에 먹을 것, 옷 몇 개를 챙긴다. 눈에 묵주가 들어와 그것을 목에 건다. 그리고 쿠로를 찾는다. 선실 제일 앞쪽에 숨어 있는 쿠로의 목덜미를 잡아 선실 밖으로 나온다. 거친 물을 보고 쿠로는 놀라서 나를 계속 할퀸다. 고민하다가 쿠로를 육지 가까이로 던진다. 육지까지 7미터. 던져진 쿠로는 약간의 헤엄과 걷기를 하더니 바위 위로 올라 앉는다. 나도 다시 물에 뛰어든다. 


걸을 수 있을 만큼 육지로 다가가 쿠로를 움켜잡고 넓은 바위 위에 올라 앉는다. 쿠로는 바로 바위 틈새로 숨어버린다.


8:19 누구에게 구조 요청을 해야 하나?

부수앙가의 요트클럽 매니저에게 위성 메신저로 구조요청을보낸다.

푸에르토 갈레라의 Eric에게도 구조요청을 했다.

위성 메세지를 보내고 메신저를 살펴보니 내가 보낸 SOS에 대한 첫 번 째 답이 와 있다. Delorm 헤드쿼터에서 나의 SOS와 위치를 수신했고, 필리핀 구조팀에게 구조요청을 전했다고. 그리고 나의 상태(몇 명인지, 다쳤는지, 배에 있는지, 구명 보트에 있는지)와 배에 대한 정보를 물어왔다. 느리지만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열린건 큰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웬지 구조는 느리게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30 숨을 돌리면서 배가 서서히 파손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신발도 한 쪽 밖에 없어서 가져온 옷으로 다른 발을 감싸 묶고 모래가 있는 해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위 밑의 쿠로를 챙겨서. 해변으로 옮기며 보니 이미 많은 부유물들이 해변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선내에 있었던 플라스틱들, 캔들, 나무들. 어제 마시던 물병, 그리고 여행 끝날때까지 먹지 않을 것 같던 V8 쥬스들이 밀려왔다. 


모래 위로 가서 쿠로를 내려 놓으니 쿠로는 쏜살 같이 숲으로 튀어들어갔다.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가 숲으로 들어가듯이.


10:05 모래 해변 끝자락 바위 벽은 가운데가 좀 낮았다. 한 사람 키 정도. 그리 올라가면 섬 반대편으로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위 벽 틈으로 올라가니 섬 반대편이 보이고 핸드폰 시그널이 잡힌다. Eric이 보내온 메세지가 떳다. ‘메세지를 받았고 부수상가 요트클럽에 메세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반대편 바다에 어선 하나가 보인다. 약 1km 거리에. 가져왔던 비상구조용 불꽃 신호기(Flare)를 켰다. 봤는지 못 봤는지 반응이 없다. 이번에는 로켓 신호를 발사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그냥 배처럼 생기고 사람이 없는 어망 관리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부들이라도 구조에 별 관심이 없을지 모르겠다.


정오가 될때까지 바위 벽의 이쪽 저쪽을 오가며 먹을 것과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부서진채로 떠내려왔다. 다행스럽게도 6리터 물통 하나와 캔 음료들을 건질 수 있었다.


1:23 벽에 오르니 Eric이 다시 핸드폰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좌초된 곳에서 15분 거리에 Flower Resort Island가 있고 그곳에 연락을 했다고. 조금 안심이 된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에릭과 통화가 되었다. 에릭은 리조트에 연락을 했고 필리핀 구조대의 정식 구조는 늦을 것 같다고 했다. 필리핀 구조대는 자체가 가진 배도 없을 뿐더러 구정의 긴 연휴를 맞아 근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나의 위치를 아니 걱정하지 말라고.


2:00 VHF에 Annapurna를 부르는 신호가 잡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어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오렌지 연기를 피우는 발연장치를 피워 내 위치를 알렸다. 대략 15분 정도 강한 연기가 올랐는데 구조선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2:23 한 번의 구조를 놓치고 나니 조바심이 나서 Eric에게 다시 위성 메세지를 보냈다. 리조트에 보트 구조 요청을 다시 보내 달라고. 그리고 좌표를 다시 보냈다. 11 6 925 119 45 2


3:00 배는 더 많이 파손되어 헐이 깨진 조각들이 해변으로 밀려왔다. 파도의 힘과 날카로운 바위 사이에서 이그러지고 찟겨나간다. 배에 뚫린 구멍으로 선내 물품들이 빠져나와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마치 세탁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내 옷들, 책들이 파도에 빙글 빙글 돌고 있다. 가끔 파도소리를 고조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환청으로 듣기도 했다. 


구조가 아주 늦어질 것 같은 예감이 밀려들었다. 혹시나 하루나 이틀을 여기서 보낼지도 모를 것 같아 먹을 것, 마실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30분에 한 번씩 섬 반대쪽을 향한 바위 벼랑으로 올라가  멈춰 있는 어선에 계속 소리를 질러 본다. 

4:26 에릭과 다시 통화가 되었다. 구조요청을 받은 flower resort에서 헬기와 파워보트를 보냈는데 나를 찾지 못했다고. 다시 요청을 보내겠다고. 그러면서 내 좌표를 다시 정확히 읽어달라고 했다. 

좌표를 보내면서 보니 처음에 에릭에게 보낸 좌표는 소숫점 좌표를 보냈다. 이건 컴퓨터에선 작동하지만 지도를 보고 읽기는 어렵다. 그래서 ‘도,분,초’로 환산된 좌표를 다시 보냈다.

VHF로 끊임 없이 구조요청을 했고, 30분에 한 번씩 어선을 향해 소리질렀다.


정말 여기서 밤을 보내고 싶진 않다. 오 제발.

31 1 / 2014

1/31(금)


03:00 갑자기 mfd가 꺼졌다. 아마도 간헐적으로 돌아가던 레이더가 순간적으로 전기 소모를 늘리며 mfd를 꺼버린 것 같다. 발전기를 2시간만 돌려 전압을 올려야 겠다.

04:50 돌풍 존에 들어온 것 같다. 선실에서도 바람이 심해진 걸 느낄 수 있다. 오토파일럿이 힘들어 해서(소리를 낸다) 밖으로 나온다. 1단 축범을 한 상태였는데 바람이 20노트 이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 배는 바람이 25노트 이상이 되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선수가 돌아버리기에 오토파일럿으로만 항해할 수가 없다.


헬름으로 나와 육지 방향으로 선수를 돌린다. 육지 근처가 바람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배는 뒷바람을 받으면서 6노트로 달리는데, 뒤에서 추가적인 뵌바람만도 17-20노트이다. 실제 바람은 25-30노트를 오가는 것 같다. 

05:30 여명이 밝아온다. 아무래 세일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바람이 좀 약해진 틈을 타 풍상으로 배를 돌리고 메인 세일을 내렸다. 메인 세일을 내린 순간 엔진이 꺼졌다. 다시 엔진을 켜려 하는데 중립에서 기어가 빠지지 않는다. 왜 일까? 이곳 저곳을 점검해 보았지만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배는 서서히 흐르고 있다.


06:00 집세일을 정리하다 보니, 집펄러 쉬트 하나가 배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메인 세일을 내리는 과정에서 집 쉬트가 스크류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기어가 풀리지 않아 엔진 시동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잠수를 해서 줄을 풀어야 한다. 날은 밝았지만 파도가 세서 감히 물로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딘가 섬 그늘로 배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오른쪽에 작은 돌 섬 하나가 보인다. 배는 파도에 의해 섬으로 밀려가고 있다. 조타를 해보니 약간의 방향 조절이 가능하다. ‘그래, 섬 근처로 가면 수심 7미터 정도 되는 곳이 나타날 테고 거기서 앵커를 내린 뒤  잠수해서 스크루에 감긴 로프를 풀자’고 결정한다. 천천히 조타하며 섬 근처로 향한다.


06:30 수심 10-5미터인 지점까지 왔다. 섬으로 부터 대략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 하지만 파도는 세다.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배 뒤의 딩기를 푼다음 물로 다이브했다. 세번 잠영을 했지만 줄은 반의 반도 못 풀었다. 다시 배로 올라와 숨을 돌린다. 아무래도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


결국 VHF의 distress 버튼을 눌렀다. VHF대로 비상 신호를 발신하면 주변의 배들이나 코스트가드가 반응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주변에 배들이나 코스트가드가 없는 모양이다. 이제 나 혼자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배가 육지쪽으로 조금씩 밀려가는게 느껴진다. 아마도 앵커가 제대로 박히지 않은 듯 하다. 줄을 풀기 위해 다시 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도가 훨씬 세지고 주변에 돌들이 보여 위험을 느끼고 배로 올라온다.


07:30 잠시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배는 바위까지 5~10미터. 순간 킬이 바닥에 부딧히는 소리가 들린다. 배를 포기(abandon the ship)하기로 결정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무얼 챙길지 고민해 본다. 방수팩에 1) 위성메신저, 2) 두 개의 아이폰, 3) 핸드 VHF, 4) EPRIB, 5) 각종 구난신호기, 6) 물 한병+캔커피+과자 두 줄, 7) 담배 3갑, 8) 여권+카드, 9) 라이터들을 챙겨 물로 뛰어든다. 이런일이 있을줄 정말 몰랐지만 그동안 항해하면서 비상시에 뭘 챙겨갈지 가끔 머릿속으로 몇 번 시뮬레이션을 해 본적이 있었다.

배에서 물로 뛰어들었다. 어깨에 맨 방수팩의 에어가 부력을 유지해줘 돌섬까지 수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도착한 곳은 날카로운 바위들로 가득한 곳이다. 네 발로 바위 위에 올라 보니 배는 돌섬 끄트머리 10미터 가까이까지 밀려왔다. 

31 1 / 2014

Annapurna와 마지막 세일링 #1

1/30(목)

12:00 점심 무렵 느즈막히 일어나 고민한다.

'오늘 떠나야 하느냐? 하루 더 있느냐?'. 늘 고민은 그렇다. 힘든 항해를 거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지만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집시'처럼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커피를 마시며 30분 정도 생각이 엎치락 뒤치락. 마음은 떠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1) 배를 둘러싼 네 개의 리조트는 충분히 둘러봤다. 그런데 얘기할 사람이 없다. 여기에 온 손님들은 대부분 가족단위의 여행자들. 가족이 있으면 어른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쇄적이다. 2) 그렇다고 둘러볼 마을도 없다. 마을이 없으니 부족한 과일이나 식료품을 보급할 길도 막막하다.


더구나 필리핀 비자도 2월 4일에 만료되기에 빨리 푸에르토 프린세사로 출발하는게 맞는 것 같다. 기상을 살펴보니 토요일쯤에 팔라완 북부로 강풍이 가까이 다가온다. 금요일에 많은 거리를 남행하는게 맞는 것 같다.


13:00 수빅에서 사온 디젤유 세 통(60리터)을 선내 기름탱크로 옮기고 부이에 연결된 묘박 라인을 풀고 출발한다. 해는 머리위에 있고 선내는 33도에 이른다.


14:20 출항은 순조롭다. 하지만 부수앙가 남단은 무풍지대(바람 1~3노트). 엔진을 켜고 이동한다. 바다위에는 어망이 군데 군데 쳐져있어 이리저리 피해나간다.  섬들은 동글동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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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도상의 거리는 탐험가를 압박한다. 그래봤자 사람은 한 발씩 움직이는 것인데… ‘184nm’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첫 발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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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바람이 조금 있지만 항해방향과 잘 맞지 않는다. 늘 고민이지만 엔진으로 직진하면 빨리 갈 수 있는 항로를 작은 바람이라도 받아 움직이면 3노트 정도의 속도에 사선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국 평속 2노트 정도가 되는 셈인데, 시간과 에너지 절약 사이에서 고민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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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가 고요하기에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한다. 예를 들면 ‘쉬는 것과 게으른 것은 다르다’라든지, ‘나는 필리핀 입출국에 $180불이나 썼는데, 에릭은 칼라판(행정도시)까지 찾아가 무료로 했다, 그 차이는 무얼까’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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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바람이 10노트 정도 되어 세일을 제대로 올리고 간다. 하지만 전기 소모가 많아서 엔진을 1,000rpm 정도 유지하며 발전을 하며 세일링 한다. 기상예보를 통해 보면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람이 세다. 하지만 육지에 너무 가까이 붙ㅡ면 항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망이나 낚시배도 많고 방향도 계속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24:00 엔진을 끄고 그동안 비축한 전기로 세일링한다. 바람은 안정적인 10-15노트, 배는 4-6노트 사이로 움직인다.

30 1 / 2014

1/29(수) Busuang Bay


베이를 가운데 두고 네 개의 리조트가 있다. 요트클럽은 그 중 하나인 Resort Del Sol bay에 있고, 요트 무어링 스팟 10개을 관리한다. 나를 제외하곤 배가 4대 정도 정박해 있어 한적한 편이다. 무어링은 무료이다. 물 공급 시설도 갖추고 있다.


Busuanga Bay Lodge는 가장 최근에 지어졌고 규모도 크다. 특이하게도 작은 푼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주일에 5,000페소면 물과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

네 개의 리조트는 각기 다른 스타일로 지어졌고 서비스의 성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하며 시설도 좋다.


매 끼 식사를 다른 리조트에서 해결해 본다. 커피를(때론 맥주를 포함한) 식사가 300페소 전후. 그 중 한 군데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수영을 하고 배로 돌아왔다. 잔잔한 곳에 무어링 하면 쿠로는 해지는 것을 헬름에 나와 즐기기도 한다.